흰 스티로폼 위로 빵빵한 붉은 비닐봉지가 종이상자를 이고 있고, 납작한 상자를 비닐끈으로 동여맸다. 쓰레기더미거니 했더니, 앞쪽 플라스틱슬리퍼 속으로 하늘색 비닐봉지가 두 발처럼 비죽 나와 있다. 상자, 비닐봉투, 비닐끈에 허접한 슬리퍼로 이뤄진 레진 소재의 설치작품이 ‘자조상’, 작가 자신이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등 유명비엔날레에 잇따라 출품하면서 ‘비엔날레작가’로 통하는 김홍석(49) 씨. 그의 작품은 전통의 소재와 기법을 넘어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현대미술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7일 개막하는 김홍석전은 ‘좋은 노동 나쁜 미술’이란 제목부터 알쏭달쏭 난해하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4인전출품작가인 그는 플라토 개인전에서 동시대 트렌드와 미술작업의 윤리라는 개념적 주제를 작품에 담아낸다.

벽면의 ‘카메라 특정적 - 공공의 공백’ ‘나는 베를린시민입니다’는 번역의 과정을 통해 그 내용이 얼마나 원본과 달라지는지를 주목한 영상이다. 또한 작가가 노동의 대가인 일당을 지불하고 고용한 누군가가 화면에 걸레질을 하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결과물은 과연 돈을 지불한 사람의 작품이냐고 반문한다.

작가는 “평범한 내 부모님의 눈높이를 의식하며 작업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시작은 검정비닐봉지나 강아지처럼 친근하고 쉬워 보이면서도 미술가와 현실에 대한 비평적 요소가 더해지면서 관람객을 혼돈과 사색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