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을 때 대출자들이 부담하는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금융기관이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는 지난해 12월 법원이 “은행이 근저당권 설정비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내린 판결을 뒤집는 것으로, 200만명에 달하는 담보대출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단독부 엄상문 판사는 장모 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2009년 9월 대출을 받을 때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와 인지세 일부 등 75만1750원을 돌려 달라’며 낸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출자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첫 판결에 은행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신용협동조합이 패소한 적은 있지만 시중은행은 지난해와 올해 초 선고된 15건의 관련 소송에서 모두 이겼고, 이 가운데는 이번 사건처럼 계약서 상에 수기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2월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는 대출 고객 271명이 ‘근저당권 설정비 4억3700만원을 반환하라’며 국민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판결에서 “시중은행은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책임 없다”고 판시했다. 또 같은 날 민사합의33부도 대출 고객 48명이 기업은행과 하나은행, 외환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한국시티은행을 상대로 낸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금융권은 이번 판결로 다시 긴장하고 있다. 시중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과 보험사 등 대출 과정에서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부담시킨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소송 판결이 줄줄이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부당이득 반환의 법정 소멸시효가 10년인 점을 감안하면 2003년 1월 이후 은행들이 대출자에게 전가한 근저당 설정비는 모두 200만명 안팎에 10조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