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호가 고질적인 수비불안 딜레마에 빠졌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6일 런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린 동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0-4로 완패했다.

지난해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 친선경기였던 호주전에 이어 벌써 A매치 3연패다. 3월 재개되는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둔 마지막 모의고사였지만 예상보다 부진한 결과에 대표팀은 해법대신 더 큰 고민만을 안게 됐다.

최강희호의 수비력에 대한 지적은 출범 초기부터 계속되어왔다. 최강희 감독은 K리그 전북 사령탑 시절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신조어를 작성할 만큼, 공격적인 축구로 색깔을 드러냈다.

하지만 화끈한 공격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수비가 불안하다는 우려는 늘 따라다녔다. K리그와 아시아무대에서는 비교적 전력의 우세를 등에 업고 공격력으로 이를 만회해왔지만, 매경기 승부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하고 한정된 시간속에 조직력을 끌어올려야하는 대표팀에서는 수비에 대한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

대형 수비수 부재-공간에 대한 이해 부족, 모두 문제

수비라인에 대한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수비수들 개개인의 기량과 경기운영의 미숙이다. 과거 수비라인은 홍명보나 이영표같이 중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이들은 빼어난 기량과 국제경험을 바탕으로 해당 포지션의 경쟁력을 넘어 수비진을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현재 대표팀에는 이런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영표와 차두리같은 베테랑들이 대표팀에서 멀어진 이후, 좌우풀백은 이제 대표팀의 고질적인 취약점이 되어버렸다. 중앙 수비라인은 곽태휘-이정수가 있지만 이들의 비중을 과거의 홍명보나 이영표같은 대형수비수들에 비견하기는 어려운 데다, 나이를 먹어가며 폼도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공격수나 미드필더들에 비하여 수비수는 해외파라고 해봐야 J리그나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부분이고,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결국 국내파들이 주축이 된 수비라인은 경험부족으로 전력상 강팀을 만나거나 까다로운 원정 환경에서 압박감을 극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최강희호의 실점패턴을 보면, 수비수들이 아군진영에서 볼을 안정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차단당하여 역습을 허용하거나, 아니면 무리하게 볼을 뺏으려다가 도리어 위험지역에서 파울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사람이 아닌 볼에만 시선을 뺏기다가 쇄도하는 상대 선수를 순간적으로 놓치며 어이없이 실점을 허용한다. 대부분의 실점 상황에서 이미 수적 우위를 확보한 상태임에도 상대에게 쉽게 찬스를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우리 수비수들이 공간싸움에 대한 이해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사라진 압박축구와 희생정신

두 번째는 압박의 실종이다. 수비 불안은 반드시 수비수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강팀들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압박축구의 정착 때문이었다. 공격수도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진을 압박하여 1차적인 패스연결을 저지하거나,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투입하는 더블 볼란치를 가동하는 등 여러 가지 전술적 시도가 이루어져왔다. 이러한 압박은 선수들 전체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이타적인 희생정신이 바탕되어야 가능하다.

대표팀의 전술은 조광래-최강희호를 거치면서 점차 공격적으로 변해왔지만 압박능력은 오히려 이전의 대표팀들에 비하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조광래와 최강희호의 공통점은 자신들보다 전력상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거의 이겨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압박의 약화로 인한 수비불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전방 공격수들의 수비가담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좌우풀백이 오버래핑에 가담했을 때 그 자리를 커버해줘야 할 미드필더들이 자기 자리를 찾지못해 공이 차단당하면 상대에게 순간적인 역습을 허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유럽파들이 대거 포진한 최근의 대표팀은 스타플레이어와 화려함은 늘었어도 내실은 오히려 떨어진다. 박지성처럼 공이 뺏기거나 넘어져도 악착같이 다시 일어나 공격권을 가져오려는 투쟁심을 지닌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저마다 소속팀에서 잘하는 선수들도 대표팀에만 오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데는, 자신에게 익숙한 역할에만 길들여져서 대표팀에서 요구하는 전술적 역할이나 희생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동국과 박주영 투톱이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 역시, 두 선수 모두 수비가담 능력이 떨어져 오히려 동료선수들에게 주는 부담이 더 크다는 부작용을 무시할수 없다.

이처럼 동료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유기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한국대표팀의 수비진이 자신들보다 개인기량과 조직력에서 우위의 강팀을 만났을 때 '늑대 앞의 양' 신세로 노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잦은 감독 교체와 연속성 없는 대표팀 운영도 원인

마지막으로는 역시 대표팀이 처한 구조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최강희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월드컵 3차예선과 최종예선 등 당장 성적을 내야하는 경기들을 소화하며 안정적으로 수비라인을 점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조광래 전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당하며 한국은 남아공월드컵 이후 팀을 재정비해야 했던 1년 반의 시간을 결국 소득없이 허비한 셈이 되었다.

세계적인 강호를 이끄는 대표팀 사령탑들도 부임 이후 공통적으로 가장 까다롭게 직면하는 문제는 역시 수비라인의 안정이다. 공격진과 달리 수비라인은 단지 걸출한 수비수 한두명만 보유했다고 전력이 안정되는 게 아니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대표팀은 감독이 너무 자주 바뀌는 탓에 안정적으로 수비조직력을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하고, 선수들이 또다시 새로운 전술과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들여야한다. 역대 최장수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허정무 감독(2년6개월)도 월드컵 16강에 올랐으나 수비 문제만큼은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강희호는 이전 대표팀들에 비하여 평가전 기회도 극히 적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 속에 확실한 포지션 적임자를 구하지 못하여 매경기마다 좌우풀백을 비롯하여 수비라인이 바뀌는 혼선을 겪어야 했다. 크로아티아전의 포백 역시 A매치에서 처음 가동되는 조합이었다. 개인기량의 열세 속에 수비진이 조직력을 다질 시간도 얻지 못한 가운데 강팀을 상대로 완벽한 수비안정화를 기대한 것은 어찌보면 무리한 요구였다.

물론 이것은 모든 대표팀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대표팀의 전력이 이처럼 불안정하다는 것은 단지 감독의 능력만을 탓하기 전에, 우리 대표팀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이 없는지부터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벌써 눈앞에 최종예선이 다가와있고, 또 4개월 후에는 월드컵 본선행 유무와 별개로 또 후임 감독 인선을 걱정해야하는 처지다. 눈앞의 성적에 급급하면서 정작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대비가 부족한 축구대표팀의 현실이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