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모들이 ‘사교육 조급증’ ‘학원 맹신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초·중·고교 학생은 물론 유아를 둔 부모까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원가를 서성거릴 정도다. 사교육 업체가 의도적으로 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기면서 선행학습 등을 위한 사교육 시작 시점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문화일보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이러한 사교육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 4차례에 걸쳐 사교육의 폐해와 근절방안, 그리고 공교육의 허점 등을 전문가들의 분석과 함께 집중적으로 짚어볼 계획이다.

“아이가 6세라고요? 세 살, 네 살 때부터 시작한 친구들도 있는데 여섯 살이면 늦죠. 일찍 시작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원어민과 ‘프리 토킹’도 하고 영어일기까지 쓴다니까요.”

지난 1월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 영어유치원. 기자가 6세 아이를 둔 부모라고 밝힌 뒤 상담을 요청하자 학원은 “늦었다”는 말부터 꺼내들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 30분까지, 또래 10명과 한 반을 맞춰 100% 영어수업을 진행한다는 이 유치원은 월 112만 원의 학원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상담원은 곧바로 “지금부터라도 영어유치원에 오면 1년 후 7세 반 때에는 간단한 영어회화 정도는 가능하다”며 “초등부로 계속 이어가면 미국 교과서를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인근 도곡동에 위치한 B 영어유치원은 10년 후에나 입학할 수 있는 특수목적고(외국어고, 과학고)를 들먹였다. 명문고 진학을 위해선 유치원생 때부터 ‘스펙 쌓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유치원은 “영어는 네 살부터 시작이다. 기본기를 다져 놓으면 자사고나 특목고에 지원할 때 도움이 되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대비도 된다”며 “국제중을 희망하는 원생들에겐 원어민 교사가 직접 추천서도 써 준다”고 유혹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확인 결과 이러한 사립 학원에서 작성한 추천서는 국제중 입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어유치원을 통해 미국, 캐나다, 필리핀 등지로 엄마와 함께 ‘영어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C 어학원은 2주간 미국의 한 사립 유치원에서 현지 학생들과 함께 정규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상품을 내걸고 있다. 비용은 800만 원에 달한다.

‘사교육 조급증’ ‘학원 맹신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의 중심에는 ‘불안 마케팅’으로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는 사교육 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결코 영어유치원뿐만 아니다. 모든 사교육 업체들은 언제나 ‘당신의 아이만 뒤처지고 있다’며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선행학습을 부추기고 있다.

1월 23일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한 학원의 학부모 설명회. 주제는 ‘우리 아이 훈육법, 자기주도학습법’이었지만, 강사는 이내 “고학년으로 갈수록 쓰기와 말하기 능력이 중요한데 이 부분은 영유아 때부터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효과가 있다”며 “엄마가 가르칠 게 아니라 교육전문가나 학원에 맡겨야 한다”고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학원에 개설된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이 수업을 들으면 대학 입시에서 요구하는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충분히 높일 수 있고 대학 입시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나 입시포트폴리오도 도움받을 수 있다”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공을 들여야 가능한 것이고 이렇게 한 학생들은 국제중에 다수 진학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 실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다. 절망감이 밀려온다”며 학원 팸플릿을 꼼꼼히 읽기도 했다.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은 “사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학원 맹신주의’는 불안 심리와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 가고 있다”며 “최근에는 영어유치원 등 사교육을 시작하는 시점이 점차 낮아지고 있고, 대부분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채 특목고나 명문대 진학을 위한 선행학습”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통계청의 ‘2011년 사교육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학부모 10명 중 2명 정도(24%)는 ‘일반 교과나 논술 관련 사교육을 수강하는 이유’에 대해 불안 심리를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