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하스님은 불교문화재에 많은 것을 새롭게 일구면서 큰 획을 그었다. 1987년 최초 사찰박물관인 통도사박물관을 세워 불화(佛畵)와 각종 불교유물을 수집하고 보존․연구하는 체계적인 박물관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박물관을 통해 매년 길이 10미터 내외의 대형불화를 전시해 한국불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정기적으로 ‘불화반’을 운영해 불화대중화에도 길을 텄다.

통도사박물관은 이후 사찰박물관의 모델이 되었고, 특히 불화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높이고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가 가능하도록 탄탄한 길을 개척해 나갔다.

이어 불화 연구에 대한 체계적 접근도 최초로 시도했다. 스님은 1989년부터 소중한 불화들의 유실을 타개하기 위해 옛 불화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기록하는 연구 사업을 시도했다. 이에 석정(石鼎)스님 등과 함께 ‘전국불화조사단’을 구성해 불화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조사는 기존 불교계 연구의 타성인 정부나 교계의 지원을 등에 업지 않고 자발적 연구진들을 이끈 것이라서 공공성 확보에 큰 획을 그었다. 스님은 직접 연구진 몇몇과 전국의 각 사찰을 다니며 불화를 조사하기 시작해, 열악한 현실 속에서 사업은 20년간 지속됐으며 결국 40권에 이르는 <한국의 불화> 집대성의 결실을 이뤄냈다.

당시 기획연구실장으로 현장 조사연구를 이끈 불교민속학자 구미래 박사는 “한국의 불화 집대성은 한국불교출판역사 에서 가장 값진 결실이며 석정스님․범하스님 두 분의 원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훌륭한 민족 문화유산”이라며 “불화는 부처님 뒤에 모셔져 있어 가까이 하기 힘든 문화재였는데, 이 결실로 인해 학계에서도 불화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일반인들 또한 불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오늘처럼 한국불화가 세계에 우뚝하게 만든 기반을 조성했다”라 말했다.

범하스님은 불화 연구를 시작하며 “불화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생성 발전되어온 민족의 전통회화로, 불교가 전파된 다른 여러 나라와 달리 한국적 특성 속에서 일찍부터 신앙화(信仰畵)로 정착됐다”면서 “역사적으로 환란이 많았던 탓에 내구성이 약한 많은 불화들이 소실되었고, 불화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말미암아 많은 불화들이 사라져갔다”고 그 동기를 밝혔었다. 이에 범하스님은 귀중한 불화들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사찰이나 박물관 등 곳곳에 소장된 불화를 한데 모아 전집(全集)을 만들어야겠다는 원력(願力)을 세웠으며, “전집을 만들게 되면 유실을 예방하고 유실된 뒤에라도 재현할 수 있다”면서 “불화를 조성하는 이나 전문학자들에게 참고자료로 제공하여 전통의 맥을 잇고, 불자 여러분께는 불보살님을 가정에 모실 수 있는 인연을 드리고자 함이었다”고 <한국의 불화> 서문에서 밝혔다.

불화 조사·연구 사업을 이끌면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막대한 경비와 전문인력의 투입을 정부지원 없는 순수 민간연구단체로 해낸 업적은 한국 학계에 상당한 감응을 일으켰다. 스님의 초인적 연구 집중력은 힘든 고난의 행군을 수차례 고비에서 전집완간으로 일궈내 초발심의 수행 원력을 대내외에 보여줬다.

1987년 통도사박물관을 개관해 지금까지 이끈 범하스님에 대해 불교중앙북물관장 원학스님은 “불교박물관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사찰조사를 담당한 성보문화재연구소와 중앙박물관관의 물적 인적 연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면서 “한국불교에서 직접적 조사연구를 개척하고 박물관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일깨운 스님의 치열한 행장은 수행자의 또 다른 본보기”라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