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처럼 맑고 투명한 수정(水晶) 조각 '크리스털'은 빛을 품었다가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성질을 지녔다. 이 영롱한 보석에서 영감을 받거나, 크리스털을 주요 재료로 써서 만든 국내 정상 패션 디자이너 8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18일 오후 2시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리젠시홀에서 열리는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Swarovski Elements)'이다. 하나의 소재를 두고 톱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해석을 입힌 다양한 의상을 선보이는 건 드문 경우. 이들에게 어떤 심정으로 옷을 스케치하고 만들었는지 물었다. 8명의 디자이너는 각각 다른 사연을 들려주면서도, "반짝임을 통해 새로운 영감 얻은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했다.

'흰 셔츠의 거장'으로 불리는 디자이너 진태옥은 이번에도 '순백(純白)'이란 주제 아래 바느질을 시작했다고 했다. "얼마 전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 운무(雲霧)가 펼쳐진 걸 봤어요. 그 오묘한 안개가 이윽고 이슬비로 바뀌어 떨어지더군요. '아, 이거야말로 내가 평생 추구해온 순백의 아름다움을 집약한 장면이구나' 했죠." 진태옥은 흰색에도 결이 있고 표정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섬세한 레이스와 실크, 얇은 가죽 등을 썼고, 크리스털 하나하나를 금사로 꿰어 일일이 손으로 달았다. 진태옥은 "나 역시 살면서 투명할 때도 있었고, 불투명할 때도 있었다. 내 삶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면서 구슬을 달았다. 그래서 크리스털도 맑은 것과 탁한 것을 섞어 썼다"고 했다.

한혜자는 크리스털 조각을 까만 천에 쏟아놓고 도심의 야경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오색영롱한 빛깔을 보면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화려한 불빛을 떠올렸다. 이 찬란한 밤의 풍경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 폭 4m짜리 천을 재단하지 않고 그대로 접고 주름을 잡아 한 벌의 옷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상봉은 크리스털을 보면서 나비를 떠올렸다고 했다. "드레스는 그래서 새장, 아니 나비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했다. 붉은 수정을 빼곡히 박은 '나비장' 위에는 염화비닐(PVC)과 홀로그램으로 만든 나비를 하나하나 붙여 나갔다. 그는 "나의 꿈도 이런 빛깔일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