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은 1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에 '정치쇄신실천협의기구(가칭)'를 함께 구성해 박·문·안 세 후보의 정치 쇄신안 중 일치하는 부분을 우선으로 합의·실천할 것을 제안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측은 이를 즉각 받아들였다.

안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문·안 두 후보의) 협상안을 보면 새누리당의 (정치 쇄신)안과 세부적인 것 외엔 차이가 없다"면서 "다른 후보와 합의가 선행될 때 진정한 쇄신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는 "형식과 격식에 관계없다. 만나서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빨리 처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로써 12일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 측이 한데 모여 '정치쇄신실천협의기구'(가칭)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각종 정치 개혁안 중 일부가 이번 정기국회 중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새누리: 이번에 법제화를 민주: 정개특위서 논위

가장 큰 관심사는 국회의원 공천 문제다. 여야는 18대 국회에서도 국회의원 공천을 위한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 도입을 논의했지만 모바일 투표 여부, 선거구 획정 등 여야 간 첨예한 쟁점과 연계돼 처리가 무산됐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중앙당의 권한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6일 "국회의원 후보는 여야가 동시에 국민참여경선으로 선출하는 것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측도 완전국민경선 방식으로 국회의원 후보자를 뽑자는 입장이다. 문재인 후보 측은 현재 선대위 산하 '새정치위원회'에서 국회의원 공천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지만 찬성 입장이다. 지난 4·11 총선 때 상당수 지역구에서 모바일·현장 투표 경선을 치른 바 있다. 박·문·안 세 후보 측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경우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이 도입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가능하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에 법제화하자는 입장이다. 안 후보 측도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문 후보 측도 당장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법제화까지는 간단치 않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문 후보 측은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 문제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서 투표시간 연장,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 등과 함께 일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후보 측 박기춘 원내대책본부장은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도 있는 만큼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당의 공천을 폐지하고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국회의원 후보자를 결정하는 제도(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해서는 박·안 후보는 당장 법제화하자는 입장이지만 문 후보 측은 빨리 처리하되 투표시간 연장,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다른 안건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 후보의 정치혁신안 중 당장 이번 정기국회 내에 법제화가 가능한 것도 있다. 가장 의견이 접근한 부분은 현재 국회에 임시 기구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 기구화하는 방안이다. 박 후보는 "선거구 획정은 100% 외부 인사에게 맡기겠다"고 했고, 문 후보와 민주당은 이미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며 안 후보도 같은 입장이다.

이 밖에 국회의원의 특권을 제한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도 이번 정기국회 내 통과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국회의원의 연금 포기 및 영리목적 겸직 금지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새누리당도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등과 함께 연금 및 겸직 관련 제도를 손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안철수 후보는 국회의원 세비 결정에 국민 배심원 참여, 변호사 의원의 겸직 금지 등의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야권 관계자는 "의원 특권 포기 관련 부분은 새누리당이 원한다면 언제든 법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정치쇄신 관련 입법·제도 개편은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처리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번 정기국회는 사실상 11월 23일까지다. 이후 임시국회가 소집된다 해도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한 달 남짓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대선을 40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종합적 연구 없이 한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원칙적으로는 대선 이후에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3후보들의 견해차이도

박·문·안 세 후보 측이 국회의원 특권 축소 등을 공동 추진키로 했지만, 견해 차이가 큰 부분도 적지 않다.

지난달 23일 안 후보는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정수 감축,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축소, 중앙당 폐지 등을 주장했다. 이 가운데 중앙당 폐지 부분은 새누리당·민주당이 중앙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편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접근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정수 감축, 국고보조금 축소 등은 쉽지 않다. 문재인 후보가 직접 나서 "비현실적"이라고 했던 부분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국가로부터 나오는 돈은 그나마 깨끗한 돈인데, 이마저도 사라지게 되면 검은돈이 활개를 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정치 현실을 모르는 안 후보의 짧은 식견을 보여준 것"이라는 다소 격앙된 반응도 나왔다. 의원 정수 축소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강연을 통해 "국민 개혁 열망에 귀 기울이는 게 포퓰리즘이라면 정치권은 국민 요구에 귀 닫겠다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의원 정수 축소는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는 의견이 많다.

문·안 후보 사이에 논의된 '새 정치 공동선언'이 막판까지 합의에 진통을 겪은 것도 중앙당 축소, 정당 보조금 감축 문제 등에 대한 양측의 견해 차 때문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 측은 중앙당 폐지에 가깝도록 선언문이 나올 수 있어야 하며, 국고보조금 축소도 명시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문 후보 측은 "정책 중심 정당을 만들기 위해 중앙당 인력을 일부 감축하고, 경상비나 인건비 등 축소는 검토해볼 수 있지만 무조건 축소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