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체결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합의안에 대한 하원 비준을 연기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사진)가 결국 당내 불신임 투표에 직면했다.

BBC는 12일(현지시간) 영국 의회가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절차에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집권 보수당의 당대표 경선을 포함해 선거관리 기능을 하는 '1922 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의장은 이날 메이 총리 불신임 투표를 위한 서한이 기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 불신임 투표는 이날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다.

영국 보수당 당규에 따르면 하원에서 확보한 의석(315석)의 15%에 해당하는 의원(48명)이 1922 위원회에 불신임 서한을 제출하면 당대표 경선을 진행해야 한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10일만 해도 메이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의원이 26명이었다. 하루 만에 불신임 서한을 보낸 의원이 최소 22명 이상인 것이다.

불신임 투표 소식을 들은 메이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 앞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반대자들에 맞서 싸울 것이며 이는 영국의 보다 나은 미래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투표가 진행되면 메이 총리는 315표 가운데 158표의 지지를 받아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메이 총리가 과반을 확보해 승리하면 총리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으며, 1년 내에는 다시 신임 투표를 열 수 없다. 메이 총리가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 총리직과 당대표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어 열리는 당대표 경선에도 출마할 수 없다.

보수당 내 수많은 의원은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번 불신임 표결을 주도했다. 하원에서 가장 반발이 심한 내용은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 '안전장치(backstop)' 관련 문제다. 영국과 EU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미래 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내용을 브렉시트 합의안에 담았다.

만약 '안전장치'가 가동되면 영국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종료할 수 없어 EU 관세동맹에 계속 잔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안전장치'하에서는 북아일랜드만 EU 단일시장 관할에 놓이게 되는데, 이 경우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간 다른 규제가 적용되면서 영국의 통합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안에 대한 의회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이를 미루면서 다음달 21일까지 수정된 합의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EU가 합의문에 손을 대는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탓이다.

불신임 투표 결정이 발표되기 전날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재협상을 위해 유럽 전역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는 하루 동안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의장,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브렉시트 합의문에 대한 재협상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처럼 메이 총리는 분주히 움직였지만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