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창작 발레 '심청'이 낭만 발레의 본고장인 파리의 무대에서도 통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작품 '심청'이 9월 29,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콩그레 무대에 올라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국 전통이 서양 발레로 매끄럽게 표현된 이국적인 공연에 파리의 까다로운 관객들도 마음을 활짝 열었다. 무용수들이 긴장을 풀고 안정적인 기량을 뽐낸 둘째 날 공연에서는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3막으로 구성된 '심청'은 고전소설 <심청전>을 원작으로 1986년 세계 무대를 겨냥해 만든 작품이다. 안무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애드리언 델라스, 음악은 미국 작곡가 케빈 바버 피카드가 맡고 대본과 무대 디자인, 조명 등은 한국 제작진이 참여한 글로벌 창작 프로젝트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2개국에서 200여 회 꾸준히 공연해 온 '심청'을 현지 기획사 초청으로 파리 중심가 대극장에서도 선보이게 됐다. '심청'은 2003년에도 파리에서 공연됐지만 이번 공연은 초청 형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74년 컨벤션센터로 개관한 팔레 데 콩그레는 한국에도 소개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와 '로미오와 줄리엣'이 초연된 파리의 대표 공연 시설이다. 이번 공연은 전체 3,723석 중 좋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1,800석만 열어 진행했고 객석은 거의 찼다. 최고가 티켓이 74유로(약 10만 7,000원)로 비싼 편이지만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2회 공연 모두 80% 이상이 유료 관객이었다. 특히 동포 관객보다 현지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토슈즈를 신고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꾸미는 생소한 광경에 객석의 예열 시간은 다소 길었다.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공양미 300석을 구하기 위해 심청(황혜민 강예나)이 용왕의 제물로 팔려가는 상황을 설명하는 전반 20여분은 연극적 전개에 가까웠다. 이후 선원들의 남성미 넘치는 군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그제야 관객은 묵직한 박수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객석 집중도가 가장 높았던 부분은 궁중 혼례와 탈춤 등 한국적 소재를 풍부하게 활용한 3막이었다. 왕비가 된 심청과 왕(엄재용 이현준)이 사랑을 약속하는 '문라이트 파드되'(달빛 2인무)는 서양 고전 발레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고 심청과 아버지 심학규가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공연을 관람한 뱅상 베르제 파리 7대학 총장은 "개인화돼 가는 현대 관객에게 가족애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점이 감명 깊었다"며 "전통 의상 덕분에 이야기 이해가 쉬웠다"고 말했다. 또 TV드라마 덕분에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한류 사이트 '꼬레 파리'(www.coree-paris.com)를 운영하는 나탈리 살리(24)씨는 "남성의 춤이 다소 여성스럽게 표현되는 프랑스 발레에 비해 한국 문화를 반영한 때문인지 남성 군무가 훨씬 역동적이고 남성적으로 그려져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종수 주 프랑스한국문화원장은 "순수예술의 바탕 없으면 대중문화의 인기는 오래갈 수 없다"며 "한국의 수준 높은 발레 공연을 소개함으로써 10~20대 여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퍼져 있는 K팝의 한계를 넘어 한국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프랑스 현지인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