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6일 양국이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서의 '공동 경제활동'을 바탕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가기로 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두 정상은 이날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이틀째 정상회담 뒤 발표한 언론성명을 통해 "북방(쿠릴) 4개 섬에서의 '공동 경제활동'을 위한 협의를 진행해가기로 합의했다"며 "이 같은 협의 개시가 평화조약 체결을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상호 이해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특히 두 정상은 성명에서 쿠릴 섬 '공동 경제활동'에 관한 협의와 그 실현이 "평화조약 문제와 관련한 일·러의 입장을 해치는 게 아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쿠릴 4개 섬이란 현재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인 쿠릴 열도 남단의 이투룹(일본명 에토로후·擇捉)과 쿠나시르(구나시리·國後),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섬을 뜻한다.

러시아 측은 이들 섬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결과에 따라 자국에 합법적으로 귀속됐다는 입장이나, 일본 측은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러·일 통호조약' 등을 근거로 이들 섬이 "일본 고유의 영토"에 해당한다며 계속 그 '반환'을 요구해왔다.

때문에 쿠릴 섬 문제는 2차 대전 종전 후 70년이 넘도록 러·일 양국 간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지 못한 주된 이유가 됐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쿠릴 섬 문제를 비롯한 평화조약 체결에 관한 일련의 합의안을 도출코자 했으나, 일단 이날 공동성명 내용은 관련 협의가 일본 측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했음을 방증해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이날 회담 뒤 푸틴 대통령과의 공동 회견에서 "(북방영토 문제와 관련해선) 해결까지 아직 어려운 길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회담에서 "제대로 된 큰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고 언급, 당장은 큰 성과가 없지만 쿠릴 섬에 대한 '공동 경제활동' 관련 협의를 통해 양국 간에 일단 지속가능한 협상 창구가 마련됐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푸틴 대통령도 이날 회견에서 "러·일 간에 평화조약이 없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된 유산"이라고 지적한 뒤 "상호신뢰를 확신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공동 경제활동의 실현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신뢰구축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를 표시했다.

이에 따라 양국은 앞으로 쿠릴 섬에서 어업, 해수면양식업, 관광, 의료, 환경 등 제반 분야에 대한 '공동 경제활동'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부처 간 협의에 나선다는 방침.

그러나 이들 섬에서의 공동 경제활동과 관련해 러시아 측은 그간 자국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반면, 일본 측 역시 법적 안정성 등을 이유로 별도 '특구' 지정을 주장하는 등 이견을 보여 온 상황이어서 추후 양국 간 협의에서 이 간극이 메워질지가 주목된다.

두 정상은 또 이번 회담을 통해 쿠릴 4개 섬으로의 '무비자 왕래' 대상을 확대하고 관련 절차를 현행보다 간소화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북방(쿠릴) 4개 섬의 미래상을 그린 뒤 그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미래지향적 발상과 새로운 접근이야 말로 최종 결과에 이르는 길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 세대에 (영토문제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은 지난 5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비공식 정상회담 당시 일본 측이 제안 러시아 극동 지역 에너지·자원개발, 의료·보건지원 등 8개 항의 경제·민생협력계획을 구체화한 세부 사업들에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국 간 경협 사업은 정부 간 사업 10여건, 민간 기업 간 협력 60여건 등 총 3000억엔(약 2조9996억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대규모 경협 사업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일·러 관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라며 "이는 일·러 쌍방의 큰 이익으로 이어지고, 틀림없이 (양국) 신뢰관계 구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내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개최되는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다시 정상회담을 열어 양국 간 경협사업의 진행 경과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