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서 네살, 세살난 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직장인 임모(36)씨는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예산 떠넘기기를 하고 있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문제만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매달 29만원씩 지원되는 보육료 지원이 끊기면 아이 둘을 어린이집 보내는데만 매달 60만원 가량의 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임씨는 "생활비도 빠듯한데 보육료마저 중단되면 형편상 아이 둘다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다"며 "한명만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둘 다 집에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맞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김모씨(37)는 5세 아들을 인근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김씨는 "결국 예산문제인데 제도는 중앙에서 만들고 돈은 지자체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것도 모순 아니냐"며 "정부가 누리과정 제도를 시행하려면 학부모들 불안하지 않게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분노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싸고 경기도의회에서 사상 초유의 준(準)예산 사태가 벌어지는 등 보육대란이 임박해 오면서 새해 부터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은 서울·광주·세종·경기·강원·전북·전남교육청 등 7곳이다. 서울·광주·경기·교육청은 시·도 의회가 이미 편성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마저 삭감한 상태다.

이 중 누리과정 대상이 35만명 가량으로 가장 많은 경기도(어린이집 15만6000명·유치원 19만4000명)의 경우 누리과정 예산 1조559억원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광역단체 준예산 사태를 초래해 학부모들의 불안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박진국 참사랑보육학부모회 대표는 4일 전화통화에서 "당장 3월부터 신학기가 시작되는데 '돈을 직접 내야 하느냐'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것만 봐도 학부모들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부모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정부와 시·도 교육청은 여전히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3일에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7개 교육청에 대해 "시·도 교육감이 유아와 학부모를 볼모로 보육대란을 운운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교육부는 의회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마저 삭감한 서울, 광주, 전남 교육청에 대해선 재의를 요구하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시 지방자치법에 따라 대법원에 직접 제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해당 시·도 교육감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급기야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구랍(舊臘) 31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시·도 교육감을 직무유기로 형사고발하겠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회는 4일에도 보도자료를 내고 "현행법령상 누리과정예산편성 의무는 시·도교육청에 있다"며 시·도 교육감들에게 예산 편성을 거듭 촉구했다.

보육계 일각에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누리과정 예산 갈등을 매년 반복하고 있는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진국 참사랑보육학부모회 대표는 "누리과정 문제는 애초부터 정부에서 내건 공약에서 출발하고 있다"며 "무능한 정부는 매년 반복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유권자로서 거기에 대한 응당한 의사표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는 다음주 중으로 '누리과정 미지급시를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안내문을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누리과정 지원금은 보통 카드로 물품을 구매하고 다음달에 채워넣은 식으로 진행된다"며 "매달 20일경에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에서 발급받은 아이사랑카드로 결제를 하면 해당 카드사가 어린집에 대납을 하게 된다. 정부(복지부산하 사회보장정보원)는 다음달 20일 이후에 결제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장 회장은 "1월분은 이미 선결제가 이뤄져 현실적으로 1월 보육대란은 피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예산 편성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선 언제든지 보육대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주안에 누리과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주에는 학부모들에게 추가비용 부담 등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안내문을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회보장정보원과 카드사는 천재지변이나 예산편성에 문제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한달치를 더 지급하도록 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에 최대 2월 말까지는 보육대란을 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