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낮 12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부근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모(33)씨는 "회사 점심시간이 1시간30분이었다가 올 여름부터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며 "이 때문에 점심시간 취미 생활을 즐기던 직원들이 모두 활동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30분일 때는 주변 산책도 하고, 커피도 여유롭게 마실 수 있어 좋았다"며 "상사가 늦었다고 눈치는 주지 않지만 조금 늦기라도 하면 불편한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사무실 들어와서 양치하고 소화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정작 기존의 업무 복귀 시간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며 "이럴바엔 차라리 원래 점심시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4년차 직장인 김모(30·여)씨는 점심 때가 다가오면 시계를 자꾸 들여다본다. '무엇을' 먹을지보다 기다리지 않고 마음 편히 먹기 위해서는 출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회사 점심시간이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1시간"이라며 "회사가 을지로에 있어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게 나가면 기다리다 밥먹고 곧장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저녁 7~8시 사이에 퇴근하는 김씨는 "집이 경기도라 퇴근하면 밤 9시가 훌쩍 넘어있다"며 "대충 먹고 씻으면 어느덧 자야될 시간이라 회사에서 요구하는 영어나 제2외국어 공부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5년차 직장인인 이모(29·여)씨는 올해 이직을 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잃었다. 이씨는 "반복되는 야근에 안정적인 저녁이 없어진 지 오래다"며 "야근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퇴근 후 운동과 학원 등 취미활동을 한다는 것은 꿈에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퇴근 시간이 일정한 직장에 다녔다는 이씨는 그때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며 "1년전만해도 오후 6시쯤 퇴근해 영어 과외를 받고, 취미를 키울 수 있는 학원까지 다녔다"며 "더불어 남자친구도 사귀고, 주말에는 여행도 다니는 등 꿈같은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저녁이 보장되는 삶을 살게 된다면, 회사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물론 단기적으로는 저녁시간까지 내놓으며 몰두하는 것이 좋겠지만, 오랜 기간을 봤을 때에는 저녁이 보장되는 여유로운 삶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고용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총 228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참고로 지난해 OECD 회원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1770시간이었으며,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가장 적은 시간을 일한 독일의 1.6배에 달했다.

이렇듯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는 단순 주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는 직장인이 많다.

직장인들은 바쁜 일상속에서 조금이라도 여유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점심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 8월 남·녀 직장인 1489명을 대상으로 '점심시간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약 70%가 '1시간 30분'을 가장 적당한 점심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잡코리아의 설문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직장인의 82.9%는 점심시간이 '1시간'이었고, '30분'이라고 답한 사람도 9.9%에 달했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1시간의 점심시간이 충분한가에 대한 문제는 직장 환경에 따라 다르다"면서도 "점심시간 만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라면 이를 늘려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점심시간이 늘어나면 장점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점심시간이 30분 늘어나면 사무실에서 나누기 어려운 대화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나눌 수 있어 다양한 생각이 나올 수 있다. 이로 인해 동료들과의 관계가 조금 더 원만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점심시간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며 "시간이 길어지면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이는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영양사협회의 송은선 위원도 점심시간이 늘어나면 업무 효율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송 위원은 "부족한 점심시간으로 저작운동(음식을 씹는 운동)이 부족해지면 소화가 안돼 몸에 무리가 간다"며 "정해진 시간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밥을 빨리 먹으면 축적된 나쁜 식습관들이 더부룩함 등의 소화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점심시간은 휴식의 일종"이라며 "업무 스트레스를 점심시간을 통해 풀어야 하지만 식사를 빨리하고 오후 업무를 시작하면 스트레스를 풀 계기가 사라져 업무 효율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함께 지난달 23일부터 3일간 직장인 5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응답자의 61%가 유료 운동시설 회원권을 등록하고 장기간 이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세연 연구원은 이에 대해 "운동시설을 안 간 이유로 응답자의 36%가 '업무 및 일상생활이 불규칙해서'라고 대답했다"며 "잦은 야근으로 집에 돌아가도 늦은 밤인 직장인들의 생활을 감안해 점심시간을 조금 늘려 운동 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