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에 나서고,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을 밝히면서 양국 갈등이 정치·외교를 넘어 경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일 오후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수출상황 점검회의 모두 발언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오전 관계장관 회의를 통해 상황 및 대응방향을 면밀히 점검했으며, 향후 WTO 제소를 비롯해 국제법과 국내법에 의거해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WTO 협정상 원칙적으로 금지될 뿐만 아니라, 지난주 일본이 의장국으로서 개최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선언문의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 환경을 구축하고 시장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성 장관은 일본의 일방적 조치에 대응해 수입선 다변화 등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이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조 차관은 이날 오후 2시25분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나가미네 대사를 불러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소재(素材)에 대해 사실상 한국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 경제산업상이 발표한 ‘대한민국에 대한 수출관리 운용 수정’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4일부터 TV·스마트폰의 유기EL(전자형광)디스플레이 패널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불소)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필요한 리지스트와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시 적용해온 수출절차 간소화 제도를 폐지한다.

우대 대상에서 제외되면 건별로 90일가량 소요되는 수출 허가신청 및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을 승인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의 금수(禁輸) 조치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일본 관방부(副)장관은 이번 조치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항(보복)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경제산업성은 발표문에서 “일·한 신뢰관계의 현저히 훼손”을 이유로 들어 최근 한·일 간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 정부는 또 통신기기 및 첨단소재의 한국 수출도 통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외국환·외국무역관리법에 따른 우대 대상인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기로 하고 다음 달 정령(政令·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집적회로(IC) 등 일본 기업이 국가안보에 관계된 제품을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건별로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