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교섭단체 3당이 24일 국회 정상화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5일 본회의를 끝으로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회가 80일 만에 정상 가동하게 됐다.

여야 간 극한 대치 속에 국회 논의가 중단됐던 민생 법안과 정부가 제출한 6조7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 논의도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국회 파행에 방아쇠 구실을 했던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에 대한 협상도 재개된다. 여야는 해당 법안에 대해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한다'고 규정했다. 합의 정신이라는 조건이 붙은 만큼 사실상 원점 수준에서 각 정당 의견을 다시 수렴하는 과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오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비공개 회동을 하고 국회 정상화와 6월 임시국회 의사 일정에 합의했다. 여야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도 열어 이낙연 국무총리의 정부 추경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청취했다.

여야는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각 정당 안을 종합하여 논의한 후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 추경 심사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되 재해 추경을 우선 심사하며,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은 오는 28일 처리하기로 못 박았다. 자유한국당이 요구했던 경제청문회는 경제원탁토론회로 대체했다. 여야 3당은 국회의장 주관으로 국회 차원에서 경제원탁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형식과 내용은 원내 교섭단체 3당이 추후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이번 임시국회 기간은 20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다. 이날에 이어 28일 본회의에선 상임위원장·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선출하며, 28일부터 예결위에서 추경 심사에 돌입한다. 7월 1~3일에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8~10일에는 대정부 질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달 11일과 17일 본회의에서 추경안과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여전히 현안에 대한 여야 간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국회 내에서 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추경안에 대해선 '재해 추경'을 우선 심사하기로 합의했지만 경기 하방 리스크 선제 대응 등 그 외 부분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 야당 측에서 '삭감' 목소리가 거셀 전망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자유한국당이 요구해 온 '지정 취소'나 '합의 처리'보다 약한 수위로 합의 문구가 결정됐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된다는 점에서 불씨가 남았다. 여기에 청와대가 지명한 김현준 국세청장·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여야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당은 최근 북한 목선 입항 사건을 두고 대여 공세의 칼을 갈고 있다. 한국당은 이날 문제의 선박이 입항했던 강원도 삼척항을 방문해 사건 축소·은폐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 의지를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당초 한국당은 이날 오전까지도 북한 목선 사건 조사와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만 '선별적으로' 참석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3시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한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나 원내대표가 합의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국회 정상화에 물꼬가 트였다. 나 원내대표는 합동 브리핑에서 "선거법·개혁 법안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으로 시작된 파행이 오늘 합의로 복원됐다"며 "그동안이 강행의 정치였다면, 이제 합의의 정치가 시작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인영 대표 결단에 감사드리고, 한국당은 이제 국회로 돌아가서 합의 정신을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며 "한국당 의총에서 이 내용을 추인받고 우리 의지를 모아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로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과 함께 줄곧 강조해왔던 문재인 정부 경제 실정 프레임을 끌고 갈 수 있는 경제원탁토론회 개최를 얻어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에 입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는 최악 상황에서 벗어났다.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면서 민생을 방기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있게 됐다.

6월 임시국회 나흘 만에 한국당 복귀로 국회가 정상화 궤도에 오를 수 있게 된 데엔 나 원내대표 말처럼 민주당 측 양보가 큰 기여를 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한국당 안을 포함해 처음부터 논의를 재개한다는 정신으로 임해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회 구성원 모두가 전력을 다해 민생을 보살피고 관련 법·예산 처리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