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의무이행 일부 중단 선언을 한 이란을 상대로 추가 제재를 부과했다. 원유에 이어 이번에는 금속 광물이 대상이다. 이란이 전날 핵프로그램 재가동을 시사하자 미국이 즉각 맞대응을 한 셈이다. 이로써 이란은 원유와 금속 광물에 대한 수출길이 차단될 뿐만 아니라 이란과 거래한 금융회사도 함께 제재 대상에 포함돼 경제적 고립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이란의 철강, 알루미늄, 구리, 철 등 산업용 금속에 대해 새로운 제재를 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산 철강과 그 외 금속 제품을 항구로 들이는 나라는 더 이상 용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BBC가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의 광물 수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55억달러(약 6조4800억원)로, 이란 전체 수출에서 1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추가 조치를 통해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 자금으로 쓰일 수 있는 수입원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모든 경로를 막고, 중동 지역에 미치는 이란의 해로운 영향력에 대응할 것"이라며 "이란은 광물 수출을 통해 얻은 수익을 대량살상무기(WMD), 테러단체, 지역 공격, 군사력 확장을 지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란이 근본적으로 행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추가 조치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며 추가 제재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이번 제재는 이란산 광물 제품 거래와 관련된 해외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 내용도 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WSJ는 "백악관은 이란이 핵프로그램 일부를 재가동할 수 있다고 경고한 지 몇 시간 만에 산업용 금속 부문에 대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브라이언 훅 미국 국무부 이란특별대표는 알아라비아와 인터뷰하면서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미국은 어떠한 공격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란 정권은 자신들의 행동을 변화시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또 훅 대표는 "이란의 핵합의 의무이행 일부 중단 선언이 국제적 규범을 위배하는 일"이라며 "미국 또는 동맹들에 대한 이란의 모든 공격에 대해 병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백악관의 팀 모리슨 대통령 특보 겸 WMD 선임국장도 이날 "이란에 대한 제재를 위반하는 그 누구라도 적발되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모리슨 국장은 이어 "지금은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 위법 행위를 강하게 규탄하고 미국의 요구를 준수하도록 이란 정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할 때"라며 "제재를 약화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모든 시도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유럽 은행·투자자·사업가들을 상대로 유럽연합(EU)과 유럽 측 이란핵합의 서명 3개국(영국·프랑스·독일)이 이란과의 교역 전담을 위해 설립한 '금융특수법인(SPV)'과 거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이란핵합의 탈퇴 이후 유럽 측 서명국들과 EU는 이란과 교역을 전담하는 SPV를 세우기로 했다. 지난 1월 '인스텍스'라는 회사를 세웠지만 아직까지 운용 실정은 없다.

이날 아바스 아그라치 이란 외무차관이 국영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이란은 핵 합의를 유지하려 하지만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그라치 차관은 "탈퇴도 고려하는 선택지 중 하나"라며 "탈퇴 과정은 단계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한 후) 지난 1년간 이란은 최대한의 인내를 발휘했다"며 "핵합의에서 정한 농축 우라늄과 중수(원자로 냉각수) 보유 한도를 지키지 않겠다"고 핵합의 의무이행 일부 중단을 발표했다.

미국은 지난 5일 이란 위협 징후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중동에 항공모함전단과 폭격기 배치를 발표했다. 이어 7일에는 유럽을 순방 중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독일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이라크를 깜짝 방문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이란핵합의 탈퇴 선언 이후 지난해 8월 이란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개인에 대한 1단계 제재(세컨더리보이콧)를 복원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석유 제품 등에 대한 2단계 제재를 시행했다.

미국의 압박에 이란 경제는 갈수록 악화됐다. 지난 1년 동안 달러에 대한 이란 리알화 가치는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물가는 40%나 올랐다. 2016년 12%까지 상승했던 이란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9%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 경제성장률을 -6%로 전망했다.

이란의 핵합의 일부 중단 선언에 대한 서명국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란의 우방이자 핵합의 서명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을 옹호하면서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AP통신에 따르면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이란 핵 문제를 놓고 긴장을 고조하는 데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타스통신은 크렘린궁이 이날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분별없고 임의적이며 비합리적인 압력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